[작성자:] Hajun Kim

  • 콜라 500ML의 마음, 355ML의 손님


    오늘은 금요일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날보다 주말을 앞두고 게으름이 심해졌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면서, 지금 쓰고 있는 구형 레노버 노트북을 탓하고 있었다. 얼마 전 가격이 크게 오르기 전에 맥북을 사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어떻게든 가성비 좋은 중고 매물을 찾아본다. 지금 나오는 가성비 중고 매물 중에선 M3 맥북 에어 15인치가 낫다고 판단해, 메모리 16기가에 SSD 256기가 기본형을 저렴하게 구매했다. 지금은 그저 배송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솔직히 웹 기반 AI 작업이나 글쓰기, 사진 업로드 정도라면 지금 쓰는 레노버로도 충분하다. 그런데도 뭔가 제대로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빨리 해치우고 싶었다. 나도 중고지만 제대로 된 장비를 갖고 싶었다. 그냥, 이유는 없다.

    “장인은 장비탓을 하지 않는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제에 이어서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겨울이라 해가 뜨기 전이다. 같이 일하다 그만둔 친구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푸드트럭에서 사용할 20리터 생수를 2통 떠서, 죄지은 것도 없는데 혹시나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 불편하기라도 할까 싶어 부리나케 도망간다. 생수를 쉽게 공수할 수 있는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다.

    이제 운영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단열이 되지 않는 차가운 바닥은 아무리 껴입어도 이겨낼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직접 정성을 들여 운영하는 매장이라 몸이 힘들어도 마음만은 편했다.

    조금 있으면 설 명절 연휴다. 그래도 고속도로에 차량 이동이 많아지게 될 것이니 장사가 조금 나아질까 싶어 급하게 메뉴 하나를 추가했다. 이름은 빅새우맛핫바.

    그렇게 명절 연휴 기간 중 할아버지와 함께 손자가 매장에 들어왔다. 적막이 흐르는 메뉴 선택 시간, 고민하던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줄 핫바를 주문한다. 따뜻하게 데워서 드렸지만, 한 입 베어문 그들의 표정에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나도 핫바 위에 올라간 새우가 진짜 새우인 줄 알았다. 속았다. 이건 음식 가지고 장난친 걸로밖에 안 보였다. 그들도 똑같았다.

    다 팔지도 못하고 남은 건 연휴가 끝나고 버린 것 같다. 눈 딱 감고 팔면 되는데, 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음식을 팔고 싶지 않다는 걸, 그리고 세상에는 그런 상품도 통하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아직도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도매나 소매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어느 날, 다른 휴게소나 주변 푸드트럭보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싶어서 코카콜라 500ML 를 1,500원에 판매했다. 다른 곳에서는 355ML 캔을 1,500원에 팔고 있었으니, ‘용량이 더 큰데 가격은 같으니 손님들이 우리 매장을 더 저렴하게 느끼겠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한 손님이 방문해서 355ML짜리가 있냐고 물었다. 우리 매장엔 500ML 코카콜라밖에 없다고 하니, 그 손님은 오히려 “355ML도 팔았으면 더 싸게 먹을 수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나는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으면서까지 더 큰 용량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싶었던 건데, 손님은 ‘용량당 가격’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가격표’가 낮은 걸 원했던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장사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이 두 가지 경험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핫바 사건은 “잘 팔리는 것과 팔아도 되는 것은 다르다”는 걸 가르쳐줬고, 콜라 사건은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이 손님에게는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줬다. 하나는 마음의 문제였고, 하나는 눈높이의 문제였다. 하지만 결국 두 이야기 모두, 내가 진심이라고 믿었던 것이 손님에게는 아무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준 셈이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굳은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정성껏 데워드린 핫바 하나에 담긴 실망감. 그 짧은 순간의 표정이, 어떤 설명보다도 더 정확하게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건 아니다”라고. 나는 그 표정을 보고서야, 매출 몇 천 원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알게 됐다.

    그리고 콜라를 사이에 두고 나눈 짧은 대화. 나는 손님을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손님은 오히려 더 낮은 숫자를 원했다. 그 순간 조금 허무하기도 하고, 조금은 서럽기도 했다. 애써 마진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려던 나의 선의가, 정작 손님에게는 닿지 않았다는 사실이.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손님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아직 손님의 언어로 말하는 법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 겨울, 단열도 되지 않는 차가운 바닥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나는 장사가 마음만으로도 안 되고 성실함만으로도 안 된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손님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읽어내는 눈, 그리고 그 안에서도 내가 팔아도 부끄럽지 않은 것을 지켜내는 마음. 그 두 가지가 함께여야 비로소 장사가 된다는 걸, 나는 그렇게 하나씩, 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서툴렀던 시간들이었지만, 그 서투름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겨울의 경험과 실패들이 사실은 가장 정직한 스승이었다.

  • 2017년 겨울, 300만 원짜리 다마스로 시작한 나의 첫 장사 이야기

    오늘 하고 싶은 말은 트렌디한 정보라기보다는, 오직 나의 기록만으로 ‘구글 애드센스 승인’을 받기 위한 도전기다. 이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구식의 방법으로 해보려고 한다. 구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E-E-A-T 중에서도 바로 내 ‘경험(Experience)’을 바탕으로 말이다.

    최근 10년 동안 내 인생을 살아오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통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지나온 현재까지의 과정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이야기하려 한다. 인터넷에 있는 유명한 사람들의 거창한 성공 스토리는 아니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때도 있고, 당신과 똑같이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매달 나가는 생활비를 걱정하고, 사고 싶은 것을 충동적으로 소비하기도 하는, 말 그대로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설프게 아직까지 10년 동안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준비만 하며 이러고 있는지도 모른다.

    2017년, 32살이 넘었지만 내 손에는 한 푼도 없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고향 집 아파트, 어렸을 때 지냈던 내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중장년 캥거루족’이 딱 내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당시 나는 뭘 해야 할지 고민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무렵 아버지는 레미콘 회사를 다니고 계셨고 어머니께서는 식당 일을 하셨다. 레미콘 일은 건설 경기를 많이 타 수입이 들쭉날쭉했다. 게다가 지역적으로도 쇠락해가는 곳이라 아버지는 출근하는 날보다 쉬시는 날이 더 많았다. 사실 집안에서 부모님의 수입에 대해 한 번도 공유한 적이 없었기에, 그저 눈치껏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기억이 하나 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새로 오픈하는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셔서 무척 바쁘셨다. 나는 관심도 걱정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과 사이가 나쁜 막장 가정이었던 건 아니다. 그저 무심했을 뿐이다. 어머니는 퇴근하시면 약국에서 피로회복제와 파스를 사 오시곤 했는데, 그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다음 날 본인이 일하는 식당으로 고기를 먹으러 오라고 하셨고, 아버지와 나는 그 식당으로 향했다.

    그날 식당에서의 아버지 모습도 떠올리면 참 원망스럽다. 식당 사장님께 뭐라도 있어 보이고 싶으셨던 걸까. 사장님과 아버지는 소주를 한 잔씩 나눠 마셨고, 아버지는 시키지도 않아도 될 메뉴를 무리해서 더 주문하셨다. 묘한 자존심 싸움의 기운이 오고 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기를 받아먹었다. 그날 어머니의 하루 일당보다 더 많은 고깃값을 한 끼 식사로 쓰고 나오는 병신 같은 내 모습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한심한 인간이었는지.

    그런 삶을 살아오다 문득 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운 좋게 친구의 소개로 기회가 왔다. 한두 달 정도 공사 현장에서 사람이 필요한데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게으른 내가 원하는 만큼의 적당한 기간이라 냉큼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공사 현장에서 땀 흘려 300만 원을 모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우연히 친구와 함께 저녁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졸음쉼터에 잠깐 쉬게 되었다. 그곳 벽에 붙어 있던 한국도로공사의 ‘졸음쉼터 청년창업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때부터 친구와 함께 쓸데없이 부푼 꿈을 꾸며 지원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최종 합격했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300만 원을 털어 중고 다마스를 샀다. 고속도로에서 장사를 하려면 짐을 싣고 출퇴근할 차량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연료는 LPG였는데 리터당 700원 정도였다. 당시 휘발유가 1,400원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무척 저렴했다. 그렇게 한국도로공사의 관리하에, 나는 반 주도적으로 첫 경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오픈 날이었던 12월의 어느 날은 유독 추웠다. 고속도로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 있다 보니 추위가 더 매섭게 느껴졌다. 푸드트럭에서 사용할 생수를 직접 떠서 차량에 싣고 출근했는데, 기온이 너무 낮아 워터펌프가 고장 나는 등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날의 첫 매출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10만 원대였다. 2017년도 최저시급 기준 8시간 일당이 5만 원이었으니, 친구와 둘이서 올린 매출 치고는 엉망이나 다름없었다. 저조한 매출이 지속되자 결국 같이 시작했던 친구는 몇 달 못 가 그만두었고,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이윽고 봄이 찾아왔지만 매출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속도로 졸음쉼터는 대개 상하행선에 모두 위치하고 있어서, 반대편 하행선에도 나와 같은 날 합격해 장사를 시작한 동생이 있었다. 그 친구는 주변에 먼저 시작한 지인의 권유로 들어온 케이스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먼저 시작했다는 그 지인의 매장은 전국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매출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 마주 보고 있던 동생의 매장 역시 매출이 영 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지난 겨울부터 온갖 생고생을 다 해왔는데, 어떻게든 매출을 올려야 했다. 나는 손님이 오지 않는 푸드트럭 안, 작은 낚시 의자에 쪼그려 앉아 끊임없이 고민했다. 퇴근 후 집에서는 포토샵으로 매장에 붙일 새로운 메뉴 홍보 포스터와 메뉴판을 정성껏 만들었다. 집에 프린터가 없어 근처 PC방에 가 한 장에 500원씩 주고 출력해 붙이는 것은 퇴근 후 일상이었다.

    추운 겨울에는 정작 나는 발을 동동구르며 내가 아닌 손님들만을 위해 작은 푸드트럭 안에 전기난로를 놓았고, 더운 여름에는 당시 한국에 출시되지도 않았던 13,000 BTU 규격의 LG 창문형 에어컨을 미국 아마존에서 직접 직구해다 설치했다. 방문하시는 기사님들이 점심시간에 기다리는 동안 뉴스라도 보실 수 있게 소형 TV도 직접 달았다. 메뉴도 특별하게 꾸몄다. 커피는 자판기가 아닌 매장용 2구 커피머신을 들여와 내렸고, 간식류는 버거, 순대, 오뎅, 핫바, 김밥을 거쳐 결국 남들 다 하는 토스트로 정착하게 되었지만 위생은 물론이거니와 소스와 각종 시럽, 사소한 물티슈 하나에도 정성을 들였다.

    매출이 적을 때는 하루 5만 원도 되지 않았지만, 장사가 안된다고 문을 닫고 쉽게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지금도 문득, 그때의 어린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주기적으로 비슷한 시간대에 방문해 주시던 손님들이 기억난다.

    지금 내 아이폰 연락처에는 “노란선글라스 토스트 2개”라고 저장된 분이 있다. 지금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분이 노란 선글라스를 쓰신 게 아니라 지금 글을 쓰며 검색해보니 MAN 트럭의 ‘골든 토파즈’ 색상 트레일러를 타고 다니셨던 것 같다. 도착하기 10~15분 전쯤 전화로 “조금 있으면 도착하니까 2개만 만들어줘” 하고 주문하시던 기사님.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셨던 것 같은데, 금요일 저녁 마감 직전에 항상 오셔서 남은 오뎅을 전부 맛있게 드시고 가시던 손님까지.

    그분들이 내 매출에 직접적으로 엄청난 큰돈을 보태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친 고속도로 위에서 홀로 버티던 나에게, 그분들이 넌지시 건네주신 응원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자 버팀목이다.

    아직 할 이야기는 많은데 어디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최대한 시간순으로 작성해보려고 한다. 일단 미뤄왔던 나라는 자신을 인터넷에 업로드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 디지털 노마드 시작

    안녕하세요 디지털 노마드를 시작했고 도서관과 사무실에 첫 출근했습니다.

    게시글로 올려야할 내용을 페이지에 올려버려 다시 업로드했습니다.

    아직 사용 방법이 익숙하지 않아 서투네요.

    점심 식사하고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와 공공 와이파이 연결해서 다시 일을 시작해 봅니다.

    26.7.8일

  •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하준킴의 블로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