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이 비밀경찰 끄나풀이었다? 헝가리가 36년 만에 연 6만 명 명단, 첫날부터 엉뚱한 사람이 찍혔다

11월 4일 수요일 아침, 헝가리 사람들은 일제히 휴대전화와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검색창에 아버지 이름을 넣어 보는 사람, 옛 직장 상사 이름을 넣어 보는 사람,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자기 이름을 넣어 보는 사람도 있었어요. 공산주의 시절 비밀경찰에 이웃과 동료를 몰래 보고하던 ‘끄나풀’ 명단이 그날 처음으로 인터넷에 열렸거든요.

하루 이틀 사이에 온 나라가 아는 얼굴들이 명단에서 튀어나왔어요. 수십 년 동안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한 국민 사회자, 아이들 방송을 이끈 진행자, 전직 중앙은행 총재, 현직 헌법재판관까지요. 그리고 이튿날 아침, 헝가리 민주화의 상징 같은 정치인이 명단에 잘못 올라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어요.

36년 동안 잠겨 있던 문서고가 열리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진실이 드러나는 걸까요, 아니면 새로운 상처가 생기는 걸까요? 오늘은 지금 헝가리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따라가 볼게요.

헝가리 부다페스트 언드라시 거리의 공포의 집 박물관 건물

옛 비밀경찰 본부 건물을 박물관으로 바꾼 부다페스트의 ‘공포의 집’. 사진: Slyronit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탱크가 들어온 날을 고른 이유

공개 날짜는 일부러 고른 거예요. 딱 70년 전인 1956년 11월 4일, 소련군 수만 명과 탱크가 부다페스트로 밀고 들어와 공산 정권에 맞선 헝가리 혁명을 짓밟았어요. 시민들은 돌을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맞섰지만 결국 무너졌고, 그 뒤로 30년 넘게 독재가 이어졌어요.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 킬리안 병영 앞 거리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 킬리안 병영 앞 거리. 사진: 작자 미상 (퍼블릭 도메인, Wikimedia Commons)

그 독재를 떠받친 게 비밀경찰이었어요. 헝가리 국가보안기록원(ÁBTL)의 체 게르게 벤데구즈 원장에 따르면 라코시와 커다르 정권 시절 비밀경찰을 도운 정보원은 모두 약 15만 명이었어요. 영국 BBC는 1944년 12월부터 1990년 2월 사이 15만~16만 명이 끌려 들어간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어요. 당시 헝가리 인구가 1천만 명 남짓이었으니, 제가 어림잡아 계산해 보면 국민 60~70명 중 한 명꼴이에요.

머저르 페테르 총리는 공개 기자회견에서 이 그물이 얼마나 촘촘했는지 예를 들었어요. 한 교사 실습생은 기숙사 밥이 맛없다고 불평했다는 이유로 정보원으로 포섭됐어요. 키스테렌예의 한 광부는 30년 동안 가족과 동료를 보고했어요. 총리는 “독재의 그물은 학교, 공장, 협동농장, 교회, 그리고 가정 안에까지 있었다”고 말했어요.

비밀경찰은 사람을 어떻게 끌어들였나

모두가 자발적으로 밀고한 건 아니었어요. 체 원장은 비밀경찰이 가족의 승진길을 막겠다고 하거나, 외국에서 주문한 약이 배달되지 못하게 하거나, 동성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서 많은 사람을 끌어들였다고 설명했어요. BBC도 일자리나 학업 기회를 빼앗겠다는 협박, 성생활이나 중독 문제를 퍼뜨리겠다는 위협이 흔했다고 전했어요. 이런 은밀한 내용은 이번 공개에서 지워졌다고 해요.

그래서 체 원장은 “독재 아래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였다”고 했어요. 비밀경찰 안에서도 실적 압박이 있어서, 명단에 이름은 있지만 실제로 보고서를 한 장도 안 낸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는 “아는 사람의 이름을 발견하면 판단하기보다 궁금해해 달라”고 당부했어요.

왜 36년이나 잠겨 있었을까

헝가리의 공산 정권은 1989~1990년에 무너졌어요. 그런데 이 명단은 왜 36년(BBC는 37년으로 셈해요)이나 공개되지 않았을까요? 독일 공영방송 DW에 따르면 체제 전환 직후 첫 총리였던 언털 요제프가 공개를 거부했고, 2010년부터 16년간 집권한 오르반 빅토르의 여당 피데스는 공개 법안에 30번 넘게 반대표를 던졌어요. 보수, 사회당·자유당 연합, 피데스 정부가 모두 검토만 하고 결국 문을 열지 않았어요.

1997~1998년부터는 자기 파일을 신청해서 볼 수는 있었어요. 하지만 그 안의 정보원 이름은 까맣게 지워져 있었어요. 그 사이 선거철마다 정적의 과거가 담긴 문서가 슬쩍 새어 나오곤 했어요. 2002년에는 메제시 페테르 당시 총리가 공산 시절 비밀 요원이었다는 사실이 친피데스 신문 보도로 터졌어요. 문서가 진실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정치 싸움의 칼로 쓰인 거예요.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어요. 많은 문서가 이미 사라졌다는 거예요. 체 원장은 1956년 혁명 때 상당수 문서가 없어졌고, 정권이 무너질 걸 직감한 1988~1989년에 엄청난 양의 포섭 서류가 파쇄됐다고 밝혔어요. 공개 사이트 첫 화면에도 “이 기록은 완전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완전할 수 없다”고 적혀 있어요.

부다페스트 외트뵈시 거리의 헝가리 국가보안기록원 건물 입구

부다페스트 외트뵈시 거리에 있는 헝가리 국가보안기록원(ÁBTL). 사진: Varius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6번 카드’에 적힌 것들

이번에 열린 사이트 이름은 ‘니토타크탁(nyitottaktak.hu)’, 우리말로 ‘열린 문서’예요. 회원 가입 없이 누구나 이름, 태어난 해와 곳, 어머니 이름, 암호명으로 검색할 수 있어요. 헝가리 매체 텔렉스에 따르면 1945년부터 1989년 사이 포섭된 정보원 약 5만 5천~6만 명의 이름이 들어 있어요.

핵심 자료는 ‘6번 카드’라고 불리는 등록 카드예요. BBC에 따르면 한 장에 정보원의 실명과 암호명, 생년월일, 주소, 어머니 이름, 그리고 포섭된 이유가 적혀 있어요. 스스로 원했는지, 아니면 협박이나 강요를 받았는지까지요. 담당 비밀경찰관의 이름도 함께 나와요.

이게 끝도 아니에요. 포섭 과정과 보고 내용을 훨씬 자세히 담은 ‘B-서류철’은 지금 디지털로 옮기는 중이고, 공산 독재 희생자 추모일인 2027년 2월 25일까지 공개될 예정이에요. 정부는 명단에서 가족 이름을 보고 충격받을 사람들을 위해 심리 상담 지원망도 함께 열었어요.

헝가리 총리 머저르 페테르의 2026년 초상 사진

명단 공개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머저르 페테르 헝가리 총리. 사진: Norbert Banhalmi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첫날부터 쏟아진 이름들

유럽 매체 EU옵서버는 “11월 4일 헝가리 전체가 열에 들뜬 듯 사이트를 뒤졌다”고 전했어요. 이튿날까지 방송인, 가수, 예술가 이름이 줄줄이 나왔어요. 가장 유명한 건 수십 년간 퀴즈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헝가리 TV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으로 불린 버고 이슈트반이에요. 헝가리 최초의 DJ로 꼽히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한 데베니 티보르, 친피데스 가수 시코러 로베르트도 나왔는데, 시코러는 누구를 보고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어요.

현직 헌법재판관 퍼치 언드라시, 전 주미 대사 시모니 언드라시, 전 중앙은행 총재 수라니 죄르지의 이름도 있었어요. 노벨상을 받은 mRNA 백신 과학자 커리코 커털린의 이름도 다시 거론됐는데, 그는 이미 2021년에 “협박 때문에 포섭됐지만 누구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힌 적이 있어요. 피데스 쪽의 유명한 지정학 전문가 노그라디 죄르지도 명단에 올랐지만 본인은 요원이 아니었다고 부인했어요.

여기서 꼭 짚어야 할 게 있어요. 명단에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이 실제로 누구를 해쳤는지 알 수 없어요. 극우 성향 ‘우리 조국’ 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이자 역사학자인 보르벤데그 주잔나는 “남아 있는 보고서 대부분은 정보원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다”며,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이름만 공개하면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든다고 비판했어요.

민주화의 상징이 ‘밀고자’로 찍혔다

그리고 둘째 날, 우려가 현실이 됐어요. EU옵서버에 따르면 명단에 레자크 샨도르의 이름이 올라 있었어요. 그는 1980년대 말 자기 집 마당이 있는 라키텔레크에서 반체제 인사들의 모임을 열어 헝가리 민주화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에요. 레자크는 “이 더러운 거짓말을 퍼뜨리는 사람은 모두 법정에서 책임지게 하겠다”고 격분했어요.

다음 날 아침 기록원은 잘못을 인정했어요. 전산 오류로 이름이 들어갔고, 실제로 레자크는 정보원이 아니라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던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머저르 총리도 공개 사과했어요. 그런데 헝가리 매체 인덱스는 이런 잘못 분류된 사람이 레자크 한 명이 아니라고 보도했어요. 감시당한 피해자가 감시한 쪽 명단에 올라가 버린 셈이에요.

비판은 거세졌어요. 전 국회의원 시페르 언드라시는 개인정보 보호 당국이 시스템 전체를 점검할 때까지 사이트를 멈춰야 한다고 요구했어요. 그는 언론에 하소연할 길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 이런 ‘전산 오류’를 당하면 가족과 이웃 앞에서 어떻게 해명하겠느냐고 물었어요. 기록원은 몇 명이 잘못 올라갔는지 아직 밝히지 않았어요. 인덱스의 한 칼럼은 “치유와 화해를 말했지만, 시작된 건 디지털 마녀사냥”이라고 썼어요. 한 매체는 아예 독자들에게 주변 사람을 찾아 “제보해 달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고 해요.

항목내용
공개일2026년 11월 4일 (1956년 소련군 진압 70주년)
공개 인원약 5만 5천~6만 명 (전체 정보원 추정 15만~16만 명)
검색 방법이름·생년·출생지·어머니 이름·암호명, 가입 불필요
카드 내용실명, 암호명, 생년월일, 주소, 포섭 동기, 담당관
다음 공개B-서류철, 2027년 2월 25일까지
첫 오류레자크 샨도르, 감시 대상인데 정보원으로 잘못 표시 → 기록원·총리 사과
빠진 기록1956년 분실, 1988~1989년 대량 파쇄
비교체코·슬로바키아는 2004년에 공개
자료: BBC, DW, 텔렉스, EU옵서버, 인덱스, 헝가리 국가보안기록원 nyitottaktak.hu (2026년 11월 4~6일 보도)

이건 음모론일까, 감춰진 역사일까

헝가리에서는 오랫동안 “누군가 일부러 명단을 숨기고 있다”는 말이 돌았어요. 오르반 총리 측근 중에 옛 비밀경찰 출신이 있다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이건 완전히 근거 없는 소문만은 아니었어요. DW에 따르면 국내 반체제 인사를 감시하던 부서의 정규 직원이었던 호르바트 요제프는 오르반 정부에서 정보 담당 보좌관으로 일했고, 2024년에는 ‘주권수호청’의 연구 책임자가 됐어요. 머저르 총리는 공개 법안이 통과된 날 “피데스는 찬성하지 않았다. 왜일까?”라고 꼬집었어요.

반대로 이번 공개를 두고는 “새 정부가 정적을 망신 주려는 정치 쇼”라는 의심도 나와요. 인덱스 칼럼은 상징적인 날짜에 맞추느라 충분한 검증 없이 서둘렀다고 비판했어요. 역사학자 러이네르 야노시는 체제 전환 직후에 했어야 할 일을 지금 하는 건 상징적인 몸짓에 가깝다고 했어요. 반면 웅바리 크리스티안은 국가가 시민에 대해 무엇을 기록했는지 아는 건 권력자의 기분에 달린 게 아니라 시민의 권리라고 반박했어요. 이 대립은 아직 진행 중이고,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2월에 나올 상세 서류가 더 보여 줄 거예요.

헝가리 비밀경찰 정보원 명단 공개 핵심 숫자 정리 카드

자료: BBC, DW, 텔렉스, EU옵서버, 인덱스 (2026년 11월 4~6일 보도)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

이 소식을 읽으면서 우리 어르신들이 떠올릴 장면이 있을 거예요. “말조심해라, 누가 들을지 모른다”는 말을 들으며 살던 시절 말이에요. 우리도 권위주의 시절 정보기관의 사찰과 조작 사건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재심과 진상 조사로 하나씩 바로잡아 왔어요.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이름이 더럽혀졌던 분들이 뒤늦게 명예를 되찾기도 했지요.

헝가리의 실험이 특별한 건 그 기록을 ‘조사위원회’가 아니라 ‘누구나 검색할 수 있는 인터넷’에 올렸다는 점이에요. 진실에 다가가는 문은 넓어졌지만, 오해와 낙인으로 가는 문도 똑같이 넓어졌어요.

내 생각

저는 이 명단을 여는 것 자체는 옳다고 생각해요. 국가가 국민을 몰래 감시한 기록이 36년이나 정치인들의 서랍 속 무기로만 쓰였다는 게 더 무서운 일이에요. 문서가 잠겨 있는 동안 진실은 소문이 되고, 소문은 선거철마다 칼이 됐어요. 차라리 모두가 같은 기록을 보는 편이 낫다고 봐요.

하지만 레자크 사건이 보여 준 것처럼, 기록을 여는 일과 기록을 설명하는 일은 같이 가야 해요. 한 줄짜리 카드만 보고 “저 사람이 밀고자였다”고 손가락질하는 순간, 비밀경찰이 하던 일을 우리가 이어서 하는 셈이에요. 협박에 못 이겨 이름만 올리고 한 번도 보고하지 않은 사람과, 30년 동안 가족을 팔아넘긴 사람은 분명히 달라요.

헝가리 기록원장의 말이 오래 남아요. “아는 사람의 이름을 발견하면, 판단하기보다 궁금해해 달라.” 저는 이 말이 헝가리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과거가 터질 때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2월 25일 상세 서류가 열리면, 저는 이름보다 그 사람이 어떤 협박을 받았는지부터 읽어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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